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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은 꽤나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굳이 특별한 점을 찾자면 유독 또래보다 머리가 좋다는 것, 또 유독 잘생겼다는 것. 김태형은 양 손을 곱게 모은 채로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생각을 더듬다 아, 하고 문득 제 특이점을 생각해낸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상한 꿈을 자주 꾸네요.”
그리곤 히이,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던 김태형의 기억이 암전된다. 눈을 뜬다. 눈앞에 보이는 새하얀 천장에 고개를 갸웃인다. 방금도 꿈이었던가?
유독 요즘 이상한 꿈을 자주 꿨다. 김태형은 고등학생인데 꿈의 김태형은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아니 꿈속의 내가 김태형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김태형이라 불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김태형은 교복을 챙겨 입고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꿈속의 내가 누구든지, 현실의 김태형은 또 늦기 전에 학교에 가야했다.
김태형은 자주 지각을 했다. 그 덕에 전정국도 지각을 했다. 아. 전정국은 김태형이 좋아하는 동생이다. 전정국은 김태형의 옆집에 살았고, 그 탓에 김태형의 무서울 정도로 과한 친화력의 첫 희생자가 됐다.
“제발 빨리 좀 나오면 안돼요?”
또 지각하게 생겼네. 전정국은 다급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김태형은 입에 물었던 식빵을 전정국의 입에 물려주며 뻔뻔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 정구가 살면서 이런 일 많이 있다.”
제대로 넥타이도 묶지 못한 김태형의 가방을 빼앗아 앞으로 맨 전정국이 김태형을 노려본다. 김태형이 한 쪽 발을 콩콩 들며 제 신발을 고쳐 신자 전정국은 식빵을 한 입 물어뜯곤 김태형의 입에 물려준다.
“미안하다고나 해야지!”
나도 이제 미안하다고 안 한다. 흉흉한 전정국의 말에 김태형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제 가방까지 든 전정국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 미안해. 미안해 정구가. 전정국은 뚱한 표정으로 김태형의 손목을 잡아끈다. 빨리 오기나 해요. 또 지각하면 진짜 징계 위원회 열린다. 김태형은 못 이기는 척 전정국을 따라 뛰었다. 어쨌든 둘은 또 지각을 했다.
전정국은 되게 부지런한 성격이었다. 아니 사실 부지런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적당히 할 일을 시간 맞춰 하기는 했다. 전정국은 또래 애들과 달리 좋은 냄새가 났고, 깔끔했으며, 무엇보다 잘생겼다. 그리고 언뜻 봤는데 좆도 큰 것 같았다. 김태형은 괜히 뿌듯한 마음에 볼일을 보는 전정국의 엉덩이를 찹찹 두드려주곤 했다. 우리 정구기. 마니 컸네. 얼굴이 시뻘개진 전정국이 빽빽 소리를 지르는 것을 무시한 채 손을 탈탈 털며 먼저 화장실을 뜬 김태형은 하마터면 동성친구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을 뻔 했으나 전정국의 넓은 아량으로 징계까진 받지 않았다. 다만 전정국을 성희롱 한 벌로 3일 내내 전정국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전정국이 김태형을 막 부려먹은 것은 아니지만.
김태형은 그런 전정국을 좋아했다. 뭐 거창한 그런 의미는 아니고. 워낙 잘생기고 말도 잘 듣고 김태형도 잘 챙기고 순해서.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전정국을 좋아하지 않는 게 가능하긴 해? 김태형은 만물정국사랑파였다. 만물이 전정국을 사랑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는 소리다. 김태형은 꼬릿꼬릿한 땀 냄새가 나고 더러운 음담패설을 뱉는 자신의 친구들보단 두 살 어리지만 순진하고 잘생기고 좋은 향기가 나는 전정국이랑 노는 게 더 좋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전정국을 사랑할 것이라 믿었다. 김태형은 자신이 조금 손해를 봐도 전정국이 손해를 보는 건 못 참았고, 자신의 몫을 다 전정국에게 주려고 했다. 그 덕에 김태형은 학교에서 정국맘으로 불렸다. 그러나 정작 챙김을 받는 것은 김태형이라는 것을 김태형만 몰랐다.
전정국은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지만 지각을 하는 편은 아니라서. 제시간에 일어나 충분히 학교에 등교할 수 있었는데 김태형과 같이 등교하겠다고 기다리는 탓에 매번 지각을 해야만 했다. 그 덕에 쌓인 벌점만 몇 점인지. 김태형은 자신 탓에 선생님께 혼나는 전정국이 보기 싫어 자신을 놓고 가라는 소리를 했다가 형은 내가 기다리지도 않으면 학교 안 올 거잖아요. 하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전정국이 진짜로 네, 그래요.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혼자 가버렸으면 엄청 서운했을거다. 김태형은 머쓱한 표정으로 웃고는 전정국을 끌어안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내가 내일부터는 진짜 일찍 나올게. 물론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었다.
“정구가 근데 나 배고프다.”
김태형은 머리가 좋았다. 그냥 좋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김태형은 머리가 존나 좋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팽팽 놀면서 쓱쓱 만점을 받아대는 김태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근데 김태형은 자기 머리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전정국은 제 허벅지를 꾹꾹 눌러대는 김태형의 발을 쓱 밀어낸다. 김태형은 익숙한지 밀어졌던 다리를 다시 뻗어 자연스럽게 전정국의 허리에 감았다.
“야아 정구가 형 심심한데.”
심심해서 정말 미쳐버린 것 같은 김태형일지라도 절대 관심을 주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전정국은 다년간의 경험 끝에 깨달았다. 전정국은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고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책에 집중한다. 관심을 주면 끝도 없이 징징거릴 김태형을 알았다. 아마 전정국은 그런 김태형에게 말려들어 결국 내일 시험을 망치게 되겠지. 전정국은 김태형한테 관심을 주지 말자. 김태형에게 관심을 주지 말자.를 꼭 주문처럼 외우며 시선을 책에 박았다. 전정국도 머리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김태형처럼 띵가띵가 놀 위인은 되지 못했다. 김태형은 입술을 비죽 내민다. 아 거 진짜 너무하네. 이 정도 했으면 좀 놀아줘도 되는 거 아닌가. 정말 김태형이 제 옆에 없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전정국에 김태형은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야 전정국.”
형이 너랑 놀아주겠다고 이렇게 왔으면 뭐 봐주는 성의라도 있어야지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형은 어? 나랑 놀자는 친구들도 다 뿌리치고 안 돼 우리 공주 놀아줘야 돼~ 하고 왔는데 진짜 너무하네 전정국. 인제 다 컸다고 형도 무시하고.. 지짜 못됐다 못됐어. 전정국은 김태형의 한탄 같은 말을 들으며 내년엔 김태형 몰래 쇼미더머니에 김태형의 지원서를 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생각만이다. 김태형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마음은 없었다. 한참을 꿍얼거리다가도 어느덧 조용해진 김태형에 전정국은 김태형이 드디어 포기한 줄 알았다. 그러니까, 전정국이 김태형을 얕봤다는 소리다.
김태형은 포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좋은 말로 하면 끈기가 있다는 소리고 나쁜 말로 하면 구질구질하다는 소리. 어쨌든 김태형은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끈기가 있는 멋진 사람으로 정의했다. 끈기가 있는 사람은 하나의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빠르게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김태형은 똑똑하기 때문에. 그 방법 중 하나는 무조건 성공하게 되어있다.
안경을 쓴 채 집중하고 있는 전정국의 얼굴을 보자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아휴 내 새끼는 공부하는 것도 이렇게 잘생겼네. 김태형은 뿌듯한 마음에 방실방실 올라가는 광대를 겨우 진정시키고 전정국의 허리에 감았던 다리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가 감히 나한테 반응을 안 한다면, 내가 반응하게 만들어주지 뭐. 음흉한 짓을 꾸미는 김태형의 광대가 뽈록, 올라왔다.
뾰족하게 세운 발끝으로 전정국의 앞섶을 뭉근히 문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밑에서 열기가 올라온다. 김태형은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음을 참으며 전정국의 눈치를 살폈다. 전정국은 집중한 탓에 김태형이 하는 짓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노트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내가 집중력을 너무 키워놨나. 김태형은 혹여나 웃음소리가 새어나갈까 입을 꼭 다문 채로 발바닥으로 불룩 올라온 전정국의 자지를 꾹꾹 눌렀다. 김태형의 발이 고환에 닿을 때마다 전정국의 몸이 움찔거린다. 김태형은 입술을 꽉 깨물어 웃음소리를 참아낸다. 전정국 참는 거 진짜 귀여워 죽겠네. 김태형은 발을 세워 열이 펄펄 올라오는 기둥을 슥 쓸어 올린다. 이래도 가만히 있을거야? 이래도? 완전히 발기하여 통 좁은 바지 속에서 발버둥치는 전정국의 자지가 안쓰러운 마음에 아예 양 발로 기둥을 잡아 몇 번 쓰다듬어 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발목이 잡혔다.
“김태형.”
김태형은 눈을 꿈뻑거린다. 어느새 안경을 책상에 곱게 벗어 놓은 전정국이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으로 김태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태형은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내가 공부 할 때는 방해하지 말랬죠.”
전정국의 손이 김태형의 발목을 타고 올라와 바지 밴드에 닿는다. 으응, 그랬지.. 김태형은 최대한 순수해 보이는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빡인다. 근데 정국아.. 그게 내가 딱히 이럴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닌...
“내일 시험 망치면 책임져요.”
김태형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전정국은 자연스럽게 김태형의 바지를 벗긴다. 김태형은 바지를 뚫을 것처럼 바짝 선 전정국의 자지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저걸 넣으면 내일 진짜 좆된다. 김태형은 본능적으로 전정국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잠깐만 잠깐만 정국아 잠깐..!”
제 위로 쏟아지는 전정국을 애써 밀어냈으나 전정국은 도무지 빠꾸라곤 모르는 애였다. 김태형의 본능이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이 먹혔고 김태형은 오늘도 다시는 전정국을 건들지 않겠다는 절대 지키지 못 할 다짐을 했다.
*
하얀 천장이 보인다. 김태형은 꿈뻑꿈뻑 눈을 뜨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본다. 여기가 어딜까. 주변 벽이며 천장이 죄다 하얀색이라 꼭 이상한 실험실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두어번 주변을 둘러본 김태형은 몸을 일으킨다. 전정국 때문에 분명 헐벗고 잠들었던 것 같은데, 왜인지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좀 움직여볼까. 김태형은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짤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지. 고개를 갸웃이던 김태형은 그제야 제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확인한다.
V.
김태형은 제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바라보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상한 이름이네. 외국 사람인가? 설마 내 조상 중에 외국인이 있었나? 김태형은 제 입체적인 얼굴의 근원을 드디어 알아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브이 조상님, 덕분에 김태형이 꽤 괜찮은 얼굴로 살아갑니다. 김태형은 가볍게 기도를 올리곤 반쯤 열려있는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눈을 떴다.
*
김태형은 느리게 몸을 바르작거린다. 방금 전에는 꿈이었나?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김태형은 눈을 감은 채 이리저리로 몸을 비틀었다. 무언가 자신을 꾹 누르고 있는 듯한 압박감이 들었다. 가늘게 눈을 뜨니 제 앞에 뽀얀 가슴이 보였다. 음. 이게 뭐지? 되게 문란하게 생긴 가슴이네. 김태형은 아무렇지 않게 제 눈앞의 뽀얀 가슴에 손을 뻗어 만지작거린다. 음 감도가 좋군. 백점 만점에 한 팔십점.. 가슴의 점수를 측정하던 김태형의 눈이 크게 뜨인다. 제 손바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유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핑크. 김태형은 머릿속 점수판에 줄을 죽죽 긋고 다시 점수를 적는다. 백점 만점에 백팔십점. 이건 백팔십점의 가슴이다. 제 눈앞의 가슴을 바라보며 적당한 점수를 매긴 김태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뾰족 서 있는 분홍색의 유두를 입에 담았다. 무슨 맛이 날지 굉장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태형은 혀를 내어 뾰족 선 살을 정성스레 핥고 어린 아이가 된 마냥 쭙쭙거리며 빨았다. 딱히 무슨 맛이 나지는 않는데... 장난스레 이를 내어 살을 앙, 하고 물때마다 위에서 앓는 소리가 나는 게 즐거웠다. 그래서 김태형은 아예 뽀얀 가슴팍에 이를 박았는데.
“... 그만 해요.”
김태형은 입을 벌린 채로 느리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제 위에는 시뻘개진 얼굴을 한 전정국이 씨근거리며 김태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꼭 금방이라도 건들면 터져버릴 것 같은 얼굴이라 김태형은 멋쩍은 표정으로 입을 떼어냈다.
“깼어?”
“그렇게 빠는데 안 깨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김태형은 최대한 순진한 표정으로 웃었다. 네 가슴인지 몰랐어 정국아 너무 맛있어보여서 나도 모르게.. 근데 너 왜 가슴을 다 내놓고 자? 이건 네가 먼저 날 꼬신 거 아니니? 전정국은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서둘러 바닥에 버려진 하얀 무지티를 입었다.
“형은 팬티나 입고 말해요.”
김태형은 그제서야 자신이 전정국의 하얀 무지티만 입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태형은 잠시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당당하게 제 아래를 드러냈다.
“왜 빨고 싶으면 너도 빨아도 돼.”
결국 전정국에게 등짝을 얻어맞고서야 김태형은 속옷과 바지를 주워 입었다. 쟤는 농담도 몰라...
전정국과 김태형은 꽤 자주 몸을 섞지만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사실 전정국이 사귀자는 말 비슷한 무언가를 말한 적이 있긴 한데 김태형은 고개를 저었다. 너랑 사귀면 안 돼. 왜요? 그냥 안 돼. 왜냐면 나는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이니까. 단호하게 말을 내뱉는 김태형 덕에 전정국 입술만 대빨 삐져나왔다.
“저는 아빠랑 섹스 안 하는데요.”
“아니 얘가 못 하는 말이 없어.”
김태형은 자기가 했던 말이나 행동은 죄다 잊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전정국의 두툼한 팔뚝을 찰싹찰싹 때렸다. 전정국은 여전히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였다.
사실 김태형도 전정국이 좋았다. 이거는 좀 특별하고 거창한 의미로. 근데 전정국이랑 사귄다거나 발전된 관계가 된다는 것이 무언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냥 뭔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전정국은 아기고, 내가 핏덩이 때부터 둥기둥기 해서 키웠고, 당장 저 얼굴만 봐도 솜털이 부숭부숭하게 난 게 어제 태어난 아기 같은데 내가 쟤랑 어떻게 사귀어? 그렇다고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결국 전정국이 백기를 들었다. 김태형은 전정국에게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늘 먼저 끌어안고 체온을 기댔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전정국을 바라보곤 했으니까. 사랑해요. 라는 전정국의 말에 배고프다. 라고 답을 하는 김태형이었지만 저랑 사귀어요. 라는 말에 너는 너무 어려서 안 돼. 라는 답이 돌아오는 걸 보면 영 가망성이 없는 장사도 아니었다. 일단 김태형의 거절 이유에 나는 네가 별로야. 라거나 나는 너랑 그럴 마음이 없어. 는 없었으니까. ‘전정국이 너무 어려서’일 뿐이지 ‘전정국을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란 소리다. 그러니까 전정국은 사귀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없이도 사랑하는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합리화 같긴 했지만 뭐. 상대가 김태형이니 적당히 납득도 가능했다.
그러나 김태형이 정말 자신의 부모라도 된 것 마냥 행동하는 거에는 적당히 심통이 나있는 참이었다. 정국맘 정국맘 소리를 듣더니 진짜 자기가 전정국 부모라도 되는 줄 아는지. 틈만 나면 엉덩이며 가슴을 만지작거릴 때는 언제고 무슨 일만 있으면 튀어나와서 진짜 부모라도 된 것마냥 전정국을 챙기는거다. 처음에는 형이 나를 신경쓰는구나. 하고 기분이 좋았는데 가면 갈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진짜 기가 막힌 건 그거였는데.
“우리 정국이 어떡해..”
전정국이 체육시간에 100m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졌던 날이었다. 근데 그렇게 많이 다친 건 아니고, 모래바닥에 한 바퀴를 구른 탓에 바지가 찢어져 무릎 부분이 조금 까져 피가 맺힌 정도였다. 그런데 어디서 알고 온 건지 김태형이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밴드며 후시딘, 그 외 다른 약품들을 한아름 들고 달려왔다. 전정국은 놀란 눈을 몇 번이고 껌뻑여야 했다. 김태형은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 저 괜찮아요 진짜.”
“너 조용히 해.”
괜찮다는 전정국을 꾸역꾸역 벤치에 앉힌 김태형은 전정국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꼭 금방이라도 깨질 도자기를 다루듯이 전정국의 무릎을 매만졌다.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다쳐서 나오는 반응이라기엔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유난이었다.
김태형은 울상을 지으며 전정국 무릎에 맺힌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김태형이 입을 다물라길래 전정국은 입을 다문 채였다. 사실 그렇게 아프지도 않은데. 김태형이 워낙 유난을 떨고 있기 때문에 전정국은 순순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내 새끼 몸에 상처 나면 안 되는데..”
내가 어떻게 만들었는데.. 정갈하게 밴드를 붙인 전정국의 무릎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김태형의 혼잣말을 듣고 있으면 조금 오싹한 기분까지 드는거다. 형이 만든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가 만든건데. 하고 웅얼거리면 김태형은 그 큰 눈을 굴려 전정국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전정국은 모른 척 다른 곳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못 해..
밴드를 붙인 전정국의 무릎 위에 경건하게 입까지 맞춘 김태형을 겨우 달랜 전정국은 그 날 이후로 제 몸에 상처 하나 흔적 하나 남기는 것을 조심하게 됐다. 무슨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유난스럽게 전정국의 몸을 살피는 김태형 때문이었다. 무슨 모기 물린 자국만 남아있어도 큰 눈을 가늘게 떠선 누구랑 붙어먹었냐며 취조하듯 전정국의 정신을 탈탈 털어대는 김태형 덕분에 전정국은 저절로 조신한 사람이 됐다. 김태형은 꼭 전정국이 자신의 소유물인양 굴었기 때문에 전정국은 친구와의 접촉 하나 대화 한 번을 조심해야 했다. 어디서 김태형이 튀어나와 눈을 부라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물론 그게 싫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이렇게 질척거릴 거면서 왜 자기와 사귀지는 않냐는 것이 의문이었다.
“제 몸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김태형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을 김태형의 앞에서 뱉어낼 만큼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라서. 전정국은 김태형이 원할 답을 뱉었다. 습관이 되어버린 말이기도 했고, 진심이기도 했다. 전정국은 김태형이 원한다면 순순히 김태형의 소유물이 될 자신이 있었다.
전정국의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김태형의 귀여운 광대가 뽈록 튀어나왔다. 전정국은 다람쥐처럼 웃는 김태형을 바라보며 따라 웃었다. 그래. 김태형이 좋으면 된 거지. 전정국은 자연스럽게 김태형의 손을 깍지 껴잡는다. 오늘은 집 가서 라면 먹을까요? 아니 햄버거 먹자. 그래요 그럼. 김태형 또한 잡힌 손을 빼지 않았다. 결국 둘 다 똑같은 인간들이다.

